역사·문화의 혼
마을탐방 역사·문화의 혼

하일 한드미의 지난 시간을 말해주는 옛 이야기와 오래전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흔적의 자리들
세월을 거슬러 올라 하일 한드미의 과거와 만나는 산책길을 함께 하세요.

대대리 허기재

- 위치 : 가곡면 대대리
- 역사 : 일제 강점기
- 내용 : 일제 강점기 때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마을 사람들이 하루 종일 산나물을 뜯고 집으로 돌아올 때 이 고개에 닿으면 한창 배가 고파서 허기 직전에 놓이게 되어 그 고개를 허기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허기재는 소백산과 마을 중간 위치에 놓여 있어 하루 종일 산속을 걸어다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허기재에 닿으면 몹시 시장한 것도 있지만, 아래턱에 집이 보이니 집에 가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배가 고파지고 시장기가 돌게 되는 것 때문에 이 고개의 이름을 허기재라고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어의곡리 장오용 의병

- 위치 : 가곡면 어의곡리
- 역사 : 조선 순종 1년 정미 (1907년)
- 내용 : 장오용(당시 20세) 의병이 의병 20명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일본 헌병대 20명이 총을 메고 마을로 진입하려는 것을 마을에 알려 피신시킨 후, 자신은 체포되어 젊은 나이에 순국하게 되었습니다.
1907년 옴력 9월 5일 그의 전사일을 기려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률 지내고 있습니다.

어의곡리 산신제

- 위치 : 가곡면 어의곡리
- 시기 : 매년 옴릭 정월 초이틀 저녁 11시
- 내용 : 매년 옴력 정월 초이틀 저녁 11 시에 산신제가 거행됩니다.
마을 주민 중 '생기복덕'이 일치하는 청결한 공양주(부부), 축관, 심부름꾼을 선정하여 산신제를 거행하게 되는데, 공양주 부부(제주)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 모두 고기와 술을 금하고 부정한 행위도 금하게 합니다. 제가 끌나면 마을 주민들은 집에 불을 밝히고 모두 나와 풍물을 치며 마을 어귀 장승으로 향하여 장승제를 지내게 됩니다.
장승제가 끝나 제 옴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덕담을 주고받는 것으로 신제의 막을 내립니다.

어의곡리 국망봉

- 위치 : 가곡면 어의곡리
- 역사 : 신라시대 말
- 내용 : 신라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의 왕자인 마의태자가 신라를 왕태조로부터 회복하려다 실패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개골산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후. 마의태자는 충청도와 경상도를 경계한 국망봉에 올라서 멀리 옛 신라의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국망봉이라 헌다고 전해집니다.

가곡면 향산리 삼층석탑

- 위치 : 가곡면
- 구분 : 보물 제405호
- 규모 : 높이 4m / 기단 폭 1.84m
- 내용 : 신라 눌지왕(435년)때 묵호자가 향산사를 창건하였고, 열반 후 제자들이 탑을 건립하고 사리틀 봉안하였습니다.
석탑의 형태가 우수하고 비례도 충실하며, 조각 수법에서도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단정한 탑의 조형을 보여 주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1935년경 탑 속의 사리를 도둑맞으면서 허물어졌던 탑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가곡면 조자형 가옥

- 위치 : 가곡면
- 구분 : 중요 민속자료 145호
- 내용 : 'ㄱ'자 모양의 안채와 사랑채가 맞물려 있고 'ㅁ'자 골을 이루는 민간 형식의 집입니다.
건축년도는 19세기 중엽 정도로 추정되는 우수한 건물로서 민가의 대표적 건축물로, 안채를 'ㄱ'자형으로 구성한 집이 이 지역에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